고양이의 무늬는 왜 다 다를까
고양이를 자세히 보면 같은 줄무늬 고양이라도 무늬가 완전히 똑같지 않다.
어떤 고양이는 등에서 배 쪽으로 가느다란 줄이 내려오고 어떤 고양이는 몸 옆에 소용돌이처럼 큰 무늬가 생긴다.
또 어떤 고양이는 줄무늬가 끊어진 것처럼 점박이로 보이고 어떤 고양이는 겉으로 보면 무늬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차이는 단순히 털색이 우연히 섞인 결과가 아니다.
고양이의 무늬는 털이 자란 뒤에 대충 칠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피부 안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는다.
고양이 배아의 피부에는 나중에 어두운 털이 날 부분과 밝은 털이 날 부분의 차이가 먼저 생긴다.
그 뒤에 털이 자라고 색소가 들어가면서 우리가 보는 줄무늬나 얼룩무늬가 드러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고양이의 무늬는 털에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먼저 그려진 설계도가 털색으로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고양이 무늬가 생기는 원리
고양이의 털색에는 멜라닌이라는 색소가 관여한다.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색 계열은 주로 유멜라닌과 관련이 있고 붉은색이나 노란색 계열은 페오멜라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고양이의 무늬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색소의 종류만이 아니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색소가 많이 만들어질지 정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고양이의 무늬는 배아 시기 피부에서 먼저 예비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는 WNT 신호와 DKK4 같은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다.
WNT는 세포들이 특정 방향으로 발달하도록 돕는 신호이고 DKK4는 그 신호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신호의 차이가 피부 위에 줄무늬가 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나누는 데 관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일이 털이 색을 띠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직 털에 색소가 제대로 들어가기 전에도 피부에서는 어느 부분이 나중에 어두운 무늬가 될지 어느 부분이 밝은 바탕이 될지에 대한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고양이의 무늬는 완성된 털을 보고 나서야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방향이 정해진다.
여기서 등 쪽 이야기도 나온다.
포유류의 색소세포는 배아의 등 쪽에 가까운 신경능선에서 시작해 몸의 옆과 배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니까 색소세포 자체는 등 쪽에서 출발해 몸 전체로 퍼지는 흐름을 가진다.
다만 고양이의 줄무늬가 물감처럼 등에서부터 차례대로 칠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색소세포가 이동하고 피부의 유전자 신호가 위치별로 다르게 작동하면서 최종 무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의 등 쪽 무늬가 더 뚜렷하게 보이거나 몸 옆으로 줄이 내려오는 모습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몸을 만드는 발달 과정과 색소세포의 이동과 피부 속 신호가 함께 만든 결과다.
줄무늬와 점박이무늬는 왜 다르게 나타날까
동물의 무늬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튜링 패턴이다.
수학자 앨런 튜링은 생물의 몸에 무늬가 생기는 원리를 화학 물질의 반응과 확산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물질은 특정 색이나 무늬가 생기도록 밀어주고 다른 물질은 그 무늬가 너무 넓게 퍼지지 못하게 막는다.
이 둘이 서로 다른 속도로 퍼지면 처음에는 아무 무늬가 없던 피부에서도 일정한 간격의 줄이나 점이 생길 수 있다.
비누 거품이나 물결처럼 처음에는 단순한 움직임에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반복적인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동물의 피부에서는 이런 과정이 유전자와 세포 신호를 통해 일어난다.
그래서 얼룩말의 줄무늬와 표범의 점무늬와 물고기의 반점도 완전히 제멋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라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규칙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줄무늬와 점박이무늬는 무엇이 다를까.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무늬를 만드는 신호가 길게 이어지면 줄무늬가 되고 중간중간 끊어져 둥글게 모이면 점박이무늬가 된다.
피부가 자라는 속도와 몸의 형태와 신호가 퍼지는 방향과 유전자의 차이가 합쳐지면 같은 기본 원리에서도 전혀 다른 무늬가 나온다.
고양이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
고등어무늬라고 부르는 매커럴 태비는 몸 옆으로 가느다란 줄이 내려오는 형태다.
클래식 태비는 줄이 넓고 소용돌이처럼 휘어져 보인다.
스팟티드 태비는 줄무늬가 끊어져 점처럼 보이는 형태다.
틱드 태비는 몸 전체의 큰 줄무늬가 거의 사라지고 한 올 한 올의 털에 밝고 어두운 띠가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유전자가 관여한다.
예를 들어 태비 무늬의 큰 차이에는 Taqpep이라는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다.
이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가느다란 줄무늬가 넓은 소용돌이 무늬처럼 바뀔 수 있다.
또 DKK4 유전자의 변화는 뚜렷한 몸통 무늬가 줄어든 틱드 태비 같은 형태와 관련이 있다.
즉 고양이의 무늬는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피부 발달 과정에서 함께 작동한 결과다.
그래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도 무늬가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의 조합이 다르고 배아가 자라는 동안 무늬를 만드는 신호의 위치와 강도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문이 비슷한 규칙을 가지고 있어도 완전히 같은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 것처럼 고양이의 무늬도 기본 규칙은 있지만 최종 결과는 개체마다 달라진다.
고양이 무늬가 흥미로운 이유는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집고양이의 줄무늬 안에는 동물의 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다.
유전자는 어디에 어떤 색이 나타날지 방향을 정하고 세포들은 그 신호를 따라 움직이며 피부는 자라는 동안 줄과 점과 얼룩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보는 귀여운 고등어무늬나 점박이무늬는 단순한 털색이 아니라 생물의 발달 과정이 겉으로 드러난 결과다.
고양이마다 무늬가 다른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모든 고양이가 같은 재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유전자 조합과 성장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어떤 고양이는 줄무늬가 선명하고 어떤 고양이는 소용돌이무늬가 생기며 어떤 고양이는 점박이처럼 보인다.
고양이의 무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몸속에서 일어난 복잡한 발달 과정이 털 위에 남긴 흔적이다.